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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오페라 이야기

로열 앨버트 홀(Royal Albert Hall)

 

 

◈ 유투브 영상
로열 앨버트 홀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퍼포먼스를 위한 무대 세팅을
보여주는 영상물
http://youtu.be/P-MhcufpEPI

BBC Last Night of the Proms 2012 - Land of Hope and Glory
http://youtu.be/9tLL1Gk4gww

1941년 5월 10일 독일군의 공습으로 런던 퀸즈 홀이 불에 탔다. 1893년 런던
도심에 문을 연 3000석짜리 콘서트홀이다. 1919년 2400석으로 객석수가 줄어
들긴 했지만 뛰어난 음향으로 정평이 나있던 홀이었다. 1895년 8월 10일 퀸
즈 홀의 매니저로 활동한 흥행업자 로버트 뉴만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프롬스
(Proms) 축제는 영국 국가에 이어 바그너의 ‘리엔치 서곡’으로 막을 올렸다.
프롬스란 ‘산책하며 즐기는 음악회’라는 뜻의 ‘프라머나이드 콘서트
(Promenade Concert)’의 준말이다. 처음엔 글자 그대로 음악이 연주되는 동
안 성냥불을 켜지 않는 조건 하에 흡연이 허용되었고 음료, 아이스크림, 꽃다
발, 담배를 파는 행상들이 객석을 비집고 다녔다. 프롬스는 1941년 8월에 퀸
즈 홀을 떠나 로열 앨버트 홀로 무대를 옮겨야 했다. 퀸즈 홀 자리엔 지금 세인
트 조지 호텔이 들어서있다.

로열 앨버트 홀의 역사는 1851년 런던 하이드 파크(Hyde Park)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Great Exhibition of the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s)로 거슬러 올라
간다.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 공(Prince Albert)이 주도한 박람회는 대성
공을 거뒀다. 앨버트 공은 박람회의 정신을 후손 대대로 이어갈 수 있는 ‘과학
과 문화를 위한 중앙 홀(The Central Hall of Arts and Sciences)’을 지을 것을
제안했다. 박람회를 함께 이끌었던 헨리 콜이 공사를 맡았다. 하지만 박람회
수익금은 앨버트 기념관 건립과 부지 매입에 다 쓰고 말았다.

건축비 20만 파운드를 마련하기 위해 헨리 콜은 객석을 100 파운드를 받고 팔
것을 제안했다. 객석 주인과는 매년 1실링(5 페니)의 사용료를 내고 999년간
임대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말이 임대이지 사실상 헌금이나 다름 없었
다. 아직도 명목상으로는 345명의 개인과 법인이 1,290석의 주인으로 되어 있
다. 빅토리아 여왕은 가장 큰 박스석인 퀸즈 박스를 포함해 20석을 샀다. 이런
식으로 10만 파운드가 모였다. 처음엔 3만석 규모의 원형극장을 지으려고 했
으나 예산 부족으로 7000석으로 줄였다. 현재는 편의 시설 확충으로 객석수
가 5500석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영국 최대 규모의 콘서트홀임에는 틀
림 없다.

건물 외벽을 삥 둘러서 대형 테라코타 프리즈(건물의 외벽을 장식하기 위해 두
르는 길고 좁은 수평판이나 띠)의 주제는 ‘예술과 과학의 승리’다. 북쪽에서 시
계 반대방향으로 16개의 테마로 된 그림이다. 1) 1851년 만국 박람회에 선물
을 가져온 세계 각국 2) 음악 3) 조각 4)회화 5) Princes, 미술 후원자와 아티스
트 6) 석공들 7) 토목공 8) 건축 9) 예술과 과학의 요람기 10) 농업 11)원예와
조경 12) 천문학과 항해술 13) 철학가, 현자, 학생 14) 공학 15)기계력 16) 도
자와 유리 공예. 그리고 프리즈 위에는 30㎝ 높이의 글자로 이렇게 씌여 있다.
“이 홀은 앨버트 공의 계획에 따라 만국의 예술, 과학, 산업의 진보를 위해 건
립되었다. 부지는 1851년 대박람회의 수익금으로 매입했다. 빅토리아 여왕이
참석하여 1867년 5월 20일 정초식, 1871년 3월 29일 개관식을 거행했다. 오
주는 위대하시다. 능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하늘과 땅에 충만하도다. 지혜
와 모든 피물이 신의 손에 있도다.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이요 땅에는 평
화로다.”

롤런드 메이슨 오디시(Rowland Mason Ordish)가 설계한 돔 지붕은 철과 유리
로 뒤덮여 있다. 맨체스터에서 안전 진단을 위해 시험삼아 조립해 본 다음 다
시 해체하여 마차로 런던까지 운반했다. 지붕을 올릴 때 낙하를 우려해서 자원
하는 사람만 건축 현장에 남아 있게 했다. 1870년 성탄절 때 완공될 예정이었
지만 이듬해 봄으로 미뤄졌다. 원래 명칭은 ‘The Central Hall of Arts and
Sciences’였으나 1867년 5월 20일 정초식에 참석한 빅토리아 여왕이 남편 앨
버트 공에 대한 추모의 뜻을 담아 ‘로열 앨버트 홀’로 이름을 바꿨다. 앨버트
공 추모비는 로열 앨버트 홀 북쪽 하이드 파크에 세워졌다. 공사에는 벽돌 600
만장, 테라코타 블럭 8만장, 개스 버너 1만 1000개, 증기 파이프 8㎞가 소요됐
다.

1871년 3월 29일 빅토리아 여왕과 영국 50개 도시에서 온 시장들이 참석한 가
운데 개관 기념식이 열렸다. 근위대 군악대가 연주하는 장엄한 음악이 울려 퍼
지는 가운데 공기 조절 파이프로 향수가 뿌려졌다. 런던 대주교가 기도를 인도
하고 ‘아멘’을 외치자 여기저기서 ‘아멘’ 소리가 튀어 나왔다. 웨일스 공 에드
워드 왕자의 환영사가 끝난 후 빅토리아 여왕이 개관 선언을 할 예정이었으나
1861년에 작고한 남편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목이 메었다. 그래서 에드워드
는 “여왕께서 이 홀이 개관되었음을 선포하노라”라고 대신 말했다.

당시 왕실 기록을 읽어보자. “웨일스 공이...환영사를 읽기 시작했다....홀의 구
석구석까지 잘 들릴 만큼 명료한 소리로 읽었다. 환영사가 두 번씩 들리는 곳
도 많았다. 이상한 메아리 때문에 한 문장을 읽고 다음 문장을 시작할 때쯤이
면 앞의 문장이 반복되는 것이었다.” 공포의 ‘메아리’ 때문에 로열 앨버트 홀에
서는 영국 작곡가의 작품을 확실하게 두 번 들을 수 있다는 농담까지 생겼다.
초연 이후 잊혀지고 마는 게 보통인데 이 홀에서는 메아리까지 포함해 두번 연
주된다는 것이다. 첫 콘서트는 프랑스 작곡가 구노(Gunod)가 지휘하는 로열
앨버트 홀 합창단의 연주였다.

개관 직전인 1871년 2월 음향 테스트에서 문제점이 발견됐다. 잔향시간이 지
나치게 길어 명료도가 떨어졌고 몇 군데서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곳도 있었
다. 이를 수정하기 위해 높이 41m의 돔 지붕 아래 옥양목 천막을 설치했다.
1949년 이 차양막에 쌓인 먼지를 제거하는데 8대의 대형 진공 청소기로 하루
종일 걸렸다. 먼지 무게만 1톤이 넘었다.

1969년에는 강화 유리 섬유로 만든 원반 형태의 음향판 135개를 천장에 매달
아 메아리를 줄여보려고 했다. 하지만 메아리 현상을 줄이기 위해 흡음을 하다
보니 음압(音壓)까지 줄어들어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약하게 들리는 현상이 나
타났다. 어쨌든 ‘버섯’ 또는 ‘비행접시’로 불리는 이 디스크는 로열 앨버트 홀
의 명물이 되어 버렸다.

파이프 오르간(파이프 9779개)은 개관 당시 영국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였다.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은 리버풀 성공회 대성당의 오르간으로 10,268개의 파
이프로 지어졌다. 로열 앨버트 홀의 파이프 오르간은 1924년, 1933년, 2002
년, 2004년에 시행된 리노베이션으로 파이프 숫자가 9,997개의 파이프와 147
개의 스톱으로 늘어났다. 오르간의 무게만 150톤이다. 음악이 퍼져나가는 공
간의 부피는 총 8만 6650㎥에 달해 빈 무직페어라인, 보스턴 심포니홀, 암스테
르담 콘서트허바우 등 음향이 뛰어난 콘서트홀에 비해 무려 5배 이상 크다.

매년 유지 보수에 드는 페인트는 300ℓ. 길이 360m의 카펫을 교체하며 전구
4800개를 갈아끼운다. 360석의 의자를 보수하며 1,000만장 이상의 티켓이 팔
려나간다. 바에서 마시는 진은 1800병, 위스키 600병, 샴페인은 5,500병이다.
3개의 레스토랑, 13개의 바를 갖췄다. 미리 주문하면 공연 시작 전이나 중간
휴식 때 박스석으로 음식을 배달해주기도 한다. 살아있는 동물은 극장 안으로
절대 들여 놓을 수 없다. 유일한 예외는 프롬스 축제 때 습기 조절을 위해 설치
한 1층 바닥의 인공 연못에 헤엄치고 노는 금붕어다.

로열 앨버트 홀은 세계 최대의 클래식 음악 축제인 ‘BBC 프롬스’의 무대로 유
명하다. 매년 7월초부터 9월 중순까지 75일간 계속되는 축제다. 축제 기간 중
에는 프롬스 축제의 창시자인 헨리 우드 경(Sir Henry Wood, 1869∼1944)의
흉상이 오르간 앞에 자리 잡는다. 원래 퀸즈 홀에 있던 것을 로열 앨버트 홀 옆
의 로열 아카데미 오브 뮤직이 소장해왔는데, 축제 기간에만 특별히 로열 앨버
트 홀 무대로 옮겨온다. 조각가 도널드 길버트가 1936년에 만든 작품이다. 마
지막 날 밤 시원한 맥고 모자에 티셔츠, 운동화 차림의 청소년들과 연미복에
영국 국기 무늬의 넥타이를 맨 신사들이 발을 구르며 환호성을 지른다. 영국
국기와 형형색의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가운데 온갖 이벤트와 해프닝으로 축
제 분위기를 돋운다. 매년 빠지지 않고 연주되는 곡은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
곡 제1번’(일명‘희망과 영광의 나라’), 패리의 ‘예루살렘’등이다. 체코 출신의
지휘자 지리 베로흐라베크(Jiří Bělohlávek)는 프롬스를 일러서 “세계에서 가
장 크고 가장 민주적인 음악 이벤트”라고 정의했는데 그의 말대로 이 축제는
여전히 지금도 세계 최대의 음악축제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로열 앨버트 홀에서는 클래식 공연만 열리는 것은 아니다. 1996년 <라보엠>
을 시작으로 오페라 공연도 열린다. 1층 바닥을 무대로 활용한다. 1872년 모르
스 부호 시연회, 1879년 전기 조명 시연회, 1833년 자전거 전시회가 열렸고
1891년에는 예배 장소로도 등록됐다. 1874년에는 음식과 와인 박람회가 열렸
다. 이 홀을 건축한 스코트 장군은 포르투갈 농장을 돕기 위해 점심 파티를 열
었다. 와인 시음회와 판매 행사를 겸했다. 이때 결성된 와인 소사이어티는 아
직도 활동 중이다. 1908년 런던 올림픽 때는 권투 경기가 열렸고, 1909년 12
월엔 영국 최초이자 마지막 실내 마라톤이 열렸다. 영국 출신의 C W 가디너와
이탈리아에서 온 도란도 피에트리의 맞대결이 관심을 끌었다. 선수들은 두터
운 코코넛 매트 위에서 524 바퀴를 뛰었다. 결국 피에트리는 482 바퀴를 돌고
기권하고 말았다.

1969년부터 1988년까지는 미스 월드 선발대회가 열렸고, 1970년엔 테니스 경
기, 1971년 무하마드 알리의 프로 권투 시범 경기, 1995년 스티븐 호킹 박사
강연회, 1999년 달라이 라마 초청 강연회도 열렸다. 2002년 11월 18일에는 제
임스 본드 영화 ‘Die Another Day’ 시사회도 열렸다. 2003년 7월에는 해리포
터 시리즈 제5권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출판 기념회에 4,500명의 어린이
들이 참석했다. 인근 임페리얼 칼리지 과학, 공학, 의학부의 학위 수여식도 여
기서 열린다.

1912년 4월 14일 타이타닉 호가 침몰하자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 연주를 그치
지 않았던 타이타닉 밴드의 유족을 돕기 위해 500명의 연합 오케스트라가 추
모 음악회를 열었다. 에드워드 엘가, 헨리 우드, 토머스 비첨 등이 번갈아 지휘
봉을 잡았다. 1963년 9월 15일 비틀스와 롤링 스톤즈의 합동 공연도 빼놓을
수 없다. 1977년 그룹 아바(ABBA)의 유럽 투어 피날레 공연, 1998년 뮤지컬
작곡의 대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50회 생일 기념 콘서트도 이곳에서 열렸
다. 최장기 공연 기록은 1989년 24일 연속 공연을 모두 매진시킨 팝가수 에릭
클랩턴(Eric Clapton)이 세웠다. 클랩턴은 그후 매년 2월 로열 앨버트 홀 무대
에 서고 있는 등 지금까지 무려 200회 이상 이 홀에서 노래하고 있다.

웨일즈 출신의 보컬리스트 셜리 베시(Shirley Veronica Bassey)도 이 홀에서
단골로 노래하는 가수 가운데 한 사람이다. 007 시리즈 중 골드핑거(1964년),
다이아몬드는 영원히(1971년), 문레이커(1979년)의 주제가를 불러서 더욱 유
명한 베시는 2001년에 에딘버러 공의 80회 탄생일을 축하하는 콘서트에서
Happy birthday를 노래하면서 처음 이 홀의 무대에 섰고, 2007년의 찰스 황태
자 신용기금 콘서트, 2011년의 고르바초프 80회 생일 콘서트, 제임스 본드 영
화의 주제가 작곡가로 유명한 존 베리(John Barry) 추모 음악회에 잇달아 출연
했다.

로열 앨버트 홀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나는 비밀을 안다’(The Man
Who Knew Too Muc. 1934년)의 로케 장소이기도 하다. 1956년 리메이크 영
화에서는 작곡가 버나드 허만이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하는 모습까지 나온
다. 영화 ‘X 파일: Fight the Future’, 우디 알렌과 스칼렛 존슨 주연의 영화
‘Scoop’(2006년)도 여기서 찍었다. 영화 ‘브라스드 오프(Brassed Off)’의 피날
레 장면에서 그림리 탄광 밴드가 브라스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장면
도 로열 앨버트 홀이 무대다. 비틀스의 노래 ‘A Day in the Life’(생의 어느 날)
의 가사에도 로열 앨버트 홀이 등장한다.
I read the news today, oh boy
four thousand holes in Blackburn, Lancashire
and though the holes were rather small
they had to count them all
now they know how many holes it takes to fill the Albert Hall
I'd love to turn you on."

이 연주홀은 2차대전의 독일공군기의 폭격에서도 살아남았다. 역사적인 런던
의 랜드마크를 파괴할 수 없었던 독일공군 파일러트들의 문화에 대한 배려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 공식 명칭: Royal Albert Hall of Arts and Science
◆ 개관: 1871년 3월 29일(재개관 2003년 7월 15일)
◆ 건축가: Lt. Col. Henry Y. D. Cole (설계 디자인은 Captain Francis Fowke)
◆ 별명: The Nation‘s Village Hall
◆ 소재: 런던 사우스 켄싱턴
◆ 용도: 클래식 음악회, 오페라, 록 콘서트, 볼룸 댄스, 서커스, 자동차 전시
회, 복싱, 레슬링     육상 경기, 스모 경기, 연회
◆ 객석수: 5,222석(입석 500석 별도)
◆ 리노베이션: 1995∼2003년
◆ 파이프 오르간: Henry Willis/ Harrison & Harrison/ Manders
◆ 상주 단체: BBC 프롬스 축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초연:
본 윌리엄스 <음악에 바치는 세레나데>(1938년)
교향곡 제6번 e단조(1948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4개의 마지막 노래>(1950년)

출처 곽근수의 음악이야기 http://www.sound.or.kr